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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인생의 낭비’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생리학적으로 보자면, 잠은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보다도 효율적인 생명 유지 장치다.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이유는 단순히 피로를 풀기 위함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의 뇌와 몸은 “정비 모드”로 들어가며, 세포를 복구하고, 면역체계를 강화하며, 불필요한 노폐물을 제거한다.

이 글에서는 수면의 단계, 뇌와 신체의 활동, 기억 통합 과정, 그리고 수면 부족이 초래하는 생리적 리스크를 통해, 우리가 자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NREM과 REM: 수면의 두 얼굴

​수면은 크게 두 가지 단계로 구분된다. NREM(비급속안구운동)REM(급속안구운동)이다. 이 두 단계는 서로 다른 리듬으로 우리의 신체를 조율한다.


NREM 수면은 ‘깊은 잠’으로 불린다. 이 단계에서 뇌파는 델타파로 전환되며, 신체의 에너지 소비가 급격히 감소한다. 이때 성장호르몬(GH)이 대량으로 분비되어 손상된 조직의 복구와 세포 재생이 이루어진다. 또한 심박수와 호흡이 안정되면서 혈압이 낮아지고, 근육이 이완되어 완전한 회복 상태로 진입한다.


반면 REM 수면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단계로, 뇌의 활동이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하다. 이때 대부분의 ‘꿈’이 발생한다. REM 수면은 감정과 기억의 통합을 담당하며, 학습 내용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Walker (2017)의 연구에 따르면 REM 수면은 특히 감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면이 부족하면 불안감과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한다고 보고됐다.



​수면 중 신체에서 벌어지는 일: 호르몬과 면역의 교향곡

​잠자는 동안 신체는 단순히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호르몬과 면역 체계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시간이다.


  1. 멜라토닌(Melatonin) – 밤이 되면 분비되는 이 호르몬은 생체 시계를 조율한다. 시상하부의 시교차상핵(SCN)은 빛의 유무를 감지해 멜라토닌 분비를 제어한다. 조명이나 스마트폰 불빛은 이 과정을 방해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1. 성장호르몬(GH) – 깊은 NREM 수면 중 분비되며, 근육 단백질 합성과 조직 복구를 촉진한다. 이 때문에 수면 부족은 운동 후 회복력 저하로 이어진다.


  1. 코르티솔(Cortisol) –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새벽 시간대에는 오히려 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정상적으로 상승한다. 수면 리듬이 깨지면 코르티솔의 분비 타이밍이 틀어져 피로감이 누적된다.


또한 수면은 면역계의 핵심 활동을 촉진한다. Dimitrov et al. (2019,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은 수면 중 T세포의 접착 분자 활성화가 증가해 면역 반응이 강화된다고 보고했다. 즉, 밤새 잘 자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뇌의 ‘청소 시스템’: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

​2013년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게재된 논문에서, 마이켄 네더가드(Maiken Nedergaard) 연구팀은 뇌 속에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는 독립적 청소 메커니즘이 존재함을 밝혀냈다.

이 시스템은 수면 중 뇌척수액(CSF)이 혈관 주변 공간을 통해 순환하며, 깨어 있는 동안 쌓인 대사 노폐물—대표적으로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제거한다. 이러한 물질이 제거되지 못하면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즉, 뇌는 우리가 자는 동안 말 그대로 ‘청소’를 하고 있는 셈이다.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이 시스템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기억력 저하와 인지 기능 감퇴로 이어진다.

​기억과 학습의 통합: 수면이 만드는 두뇌의 백업 시스템

​잠은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의 일부다. 학습한 정보는 깨어 있는 동안 ‘단기 저장소’에 머물다가, 수면 중에 ‘장기 저장소’로 이동한다.

하버드대 Walker & Stickgold (2004) 의 연구는 수면 중 특히 REM 단계에서 시냅스 재배열과 신경 회로 강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과정은 마치 하드디스크의 ‘디프래그’와 유사하다. 새로운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기존 데이터 구조를 정리하고 재배치하는 것이다.


반대로 수면이 부족하면, 뇌의 해마(hippocampus) 활동이 떨어져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급감한다. 직장인들이 ‘머리가 멍하다’거나 ‘집중이 안 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순 피로가 아니라, 수면 부족으로 인한 기억 통합 실패일 가능성이 높다.

​수면 부족이 초래하는 생리적 리스크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곤한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생리학적으로는 만성 스트레스와 유사한 효과를 일으킨다.

코르티솔의 만성적 과분비는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고, 체중 증가와 대사 증후군 위험을 높인다. 또한 수면 부족은 렙틴(Leptin) 감소와 그렐린(Ghrelin) 증가를 초래해, 포만감 조절이 어려워지고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면역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 2019년 Sleep 저널에 따르면, 하루 5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은 7시간 이상 자는 사람에 비해 감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4.5배 높다고 한다.

결국, 수면 부족은 단순한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면역, 대사, 인지 시스템의 전방위적 붕괴 신호다.

수면은 생명 유지 장치다

​잠은 ‘멈춤’이 아니라 리셋(reset) 이다. 깨어 있는 동안 소비된 신체 자원을 복원하고, 뇌 속 쓰레기를 청소하며, 내일의 인지 능력과 면역력을 위한 기반을 다진다.

수면을 줄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하드웨어를 과열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이유는 단순히 나태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야말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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